루프트한자, 학 상징과 함께한 100년 개척 정신과 변화, 새로운 시작으로 가득한 특별한 여정에 함께하세요. 1926년에 시작되어 1950년대에 다시 출범한 이 이야기는 오늘날 글로벌 성공 사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치, 역사적 장벽에 직면할 때마다 루프트한자가 어떻게 거듭 재탄생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돌아보고, 현재 매년 수백만 명을 목적지까지 실어 나르는 항공사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여정을 알아보세요.
독일 항공 역사에 있어 중요한 순간입니다. 1926년 1월 6일 베를린에서 Deutscher Aero Lloyd AG(DAL)와 Junkers Luftverkehr AG(ILAG)가 합병하여 Deutsche Luft Hansa AG(DLH)가 설립되었습니다. 학을 새로운 로고로 내세운 첫 항공기가 봄에 이륙하며 하늘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1927년
루프트한자는 창립 1년 만에 주목할 만한 노선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학은 뮌헨에서 알프스를 넘어 베네치아로 베를린에서 발트해를 건너 오슬로로 비행하며, 모스크바로 향하는 정기 노선도 운항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에 루프트한자는 항공과 철도를 결합한 복합 운송을 처음으로 시험 운영했습니다. 두 교통수단을 연계함으로써 이동 시간이 단축되고 지역 간 연결성이 향상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루프트한자 익스프레스 열차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1929년
5월 29일, 루프트한자는 여름 휴가 여행의 새로운 시대를 열며 질트, 노더나이, 뤼겐 등 섬 지역을 잇는 정기 ‘해변 노선’을 개설했습니다. 도르니에 발과 같은 비행정은 해안까지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을 뿐 아니라, 해변을 찾는 휴양객들에게 도착 그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이 새로운 서비스는 “Fliegt in die Bäder!” (해변으로 여행하세요!)라는 대표적인 캠페인 슬로건과 함께 선보였습니다.
1932년
최초의 융커스 Ju 52가 루프트한자 기종에 합류했습니다. 곧 ‘Tante Ju’(‘유 아주머니’)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진 이 전설적인 항공기는 항공사의 주력 기종으로 활약하며, 개척 정신과 기술적 탁월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33년
국가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하면서 루프트한자는 이른바 ‘나치화’라 불리는 정치적 통제와 강제적 동조의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그 첫 번째 변화 중 하나로, 정기 주주총회에서 기존의 회사명을 하나의 단어로 재정비해 루프트한자 독일 항공(Deutsche Lufthansa Aktiengesellschaft)로 변경하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1934년
루프트한자는 남아메리카를 잇는 정기 항공 우편 노선을 개설했습니다. 노선은 길고 항공기의 연료 탱크는 작았지만, 해법은 있었습니다. 항공기가 대서양 한가운데에 착수해 선박에서 연료를 보급받은 뒤 다시 이륙하는 방식으로, 이는 물류 운영의 혁신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또한 루프트한자는 융커스 Ju 52 두 대를 이끌고 베를린을 출발하여 세계에서 가장 외지고 위험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중앙아시아 파미르 산맥으로 향하는 탐험 비행에 나섰습니다. 이번 탐험의 목표는 극동 항공 노선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소련 영토를 우회하는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탐험이 특별했던 이유는 항공기가 해발 5,000m(16,400피트)가 넘는 고갯길을 넘어야 했고, 좁은 산악 협곡을 통과하며, 극도로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조건을 견뎌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Ju 52 한 대는 중국 북서부 허톈에서 비상 착륙을 해야 했습니다. 승무원들은 현지에서 한동안 억류되었고, 몇 주가 지난 뒤에야 안전하게 베를린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1938년
1939년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정기 항공 운항은 거의 전면 중단되었으며, 다수의 항공기와 승무원들이 공군에 편입되었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국은 독일의 모든 형태의 항공 운항을 금지했습니다. 항공기 제작, 보유 및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독일 항공 산업은 사실상 정지 상태에 놓였습니다.
1933년~1945년
국가사회주의 시대의 루프트한자
1933년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독일뿐만 아니라 루프트한자 역사에서도 가장 암울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의 루프트한자는 나치 정권의 일원이 되어 그들의 군사 및 범죄 활동에 부역했습니다. 회사 내 모든 사람이 이러한 행동 방침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지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루프트한자는 나치 시대와 그 이전에도 국가 보조금과 주요 나치 당원들과의 협력 등을 통해 이익을 얻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회사는 루프트바페(독일 공군) 조종사를 양성하고 군수품 생산에 관여했습니다. 특정 시기에는 노동 인력의 최대 50%를 차지한 수천 명의 강제 노동자들이 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노동에 동원되었습니다.
또한, 루프트한자는 창립 100주년을 계기로 국가사회주의 시기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나치 시대 루프트한자의 역할에 대한 통찰은 독립 경제사학자 3명이 집필한 책 Lufthansa – The First 100 Years(루프트한자 - 창립 100년)링크가 새 브라우저 탭에서 열립니다에 담겨 있습니다. 2026년 여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새로운 방문자 센터인 ‘Hangar One’이 개장하며, 나치 시기를 다룬 전시를 비롯한 다양한 전시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1951년
루프트한자의 재설립을 위한 여러 중요한 결정이 내려진 해입니다. 1951년 2월, 첫 번째 루프트한자를 청산하고, 쾰른에서 새로운 항공사의 구상이 본격화되었으며 같은 해, 교통부 장관 한스-크리스토프 지봄(Hans-Christoph Seebohm)에게서 의뢰를 받아 한스 M. 봉거스(Hans M. Bongers)가 이끄는 팀이 새로운 독일 항공사를 위한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서독의 항공 주권을 단계적으로 회복하겠다는 연합국의 약속에 힘입어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1953년
전후 독일이 재건에 나서면서 항공 산업도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 출발의 신호는 쾰른에서 울려 퍼졌고, 항공 운송 수요 주식회사(Aktiengesellschaft für Luftverkehrsbedarf, ‘Luftag’) 설립과 함께 두 번째 루프트한자의 기반이 다져졌습니다.
1954년
8월 6일, 항공 운송 수요 주식회사(Aktiengesellschaft für Luftverkehrsbedarf, ‘Luftag’)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기존 명칭인 루프트한자 독일 항공(Deutsche Lufthansa AG)으로 회사명을 변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몇 주 후 3만 독일 마르크를 지불하고 첫 번째 루프트한자를 상징하는 학 문양과 파란색과 노란색 깃발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으며, 이를 통해 루프트한자의 공식 상표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법적으로는 신설 회사였지만, 전쟁 이전 루프트한자와 시각적 및 명칭상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루프트한자는 새로운 기업 디자인을 개발하며 학 문양에 통일된 형태를 부여했고, 이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새롭게 설립된 루프트한자가 운항을 재개했습니다. 4월 1일, 독일 국적 마크를 꼬리 날개에 단 두 대의 루프트한자 컨베어 340 항공기가 거의 동시에 이륙했습니다. 한 항공기가 함부르크에서 출발해서 뒤셀도르프와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뮌헨으로 향했으며, 다른 한 대는 뮌헨을 떠나 프랑크푸르트와 쾰른을 거쳐 함부르크로 향했습니다.
1955년 4월 19일, 첫 번째 록히드 슈퍼 컨스텔레이션이 루프트한자에 인도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은 “대서양을 건넜고”, 6월 8일에는 두 번째 루프트한자의 첫 대서양 횡단 정기 항공편이 함부르크에서 뉴욕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같은 시기 루프트한자는 스포츠와 정치 분야에서도 특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서독 육상 국가대표팀을 전세기로 헬싱키로 운송했으며, 루프트한자 항공기 두 대가 아데나워 총리와 서독 대표단을 모스크바 브누코보 국제공항으로 수송했습니다.
1956년
루프트한자는 첫 남미 노선을 신설하여, 함부르크에서 출발해서 뒤셀도르프/프랑크푸르트, 파리, 다카르를 거쳐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어지는 노선을 취항했습니다. 수천 킬로미터에 걸친 비행과 여러 시간대를 아우르는 이 도약은 대륙을 연결하며 국제 노선망을 대폭 확장했습니다. 이와 함께 테헤란, 이스탄불, 베이루트, 바그다드로행 정기 노선도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루프트한자는 ‘페이퍼 제트’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적인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실제 제트기가 이륙하기 훨씬 이전부터, 미래 제트 항공 운항의 모든 절차와 노선, 조건을 종이 위에서 시뮬레이션하는 이 선구적인 개념은 항공사가 다가올 제트 시대를 미리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하늘에 등장한 새로운 별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바로 록히드 L-1649A 스타라이너입니다. 이 ‘슈퍼 스타’는 대서양 횡단 항공 여행을 대표하는 상징적 기종으로 자리 잡았고,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대형 항공기였습니다. 새로운 항공기는 향상된 기내 편의성과 더 긴 항속 거리, 높은 안정성을 제공하며 대서양 횡단 항공 여행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같은 해, 루프트한자는 1955년 운항 재개 이후 누적 이용객 100만 명을 맞이했습니다. 이는 승객들이 항공사에 보낸 높은 신뢰를 보여주는 성과였습니다.
이후 뉴욕 노선 퍼스트 클래스에서 Senator 서비스를 처음으로 도입했으며, 부유한 고객층을 유치하기 위해 18석의 디럭스 슬리퍼 좌석과 침대, 라운지, 고급 기내식을 갖춘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1964년
보잉 727 도입으로 루프트한자의 현대적인 유럽형 제트기가 처음으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이 3엔진 제트 항공기는 단거리 및 중거리 노선에서도 제트 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며, 유럽 내 항공 여행의 양상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또한 7월 23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루프트한자 항공편에서 고도 약 1만 m(33,000피트) 상공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역사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여자 아이는 바바라 루프트한자 헤어초크(Barbara Lufthansa Herzog)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1968년
그에 앞서 루프트한자는 이미 미국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사를 설득해, 단거리 노선에서도 경제적으로 운항할 수 있는 제트기 설계를 추진해 왔습니다. 루프트한자 엔지니어들은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항공기 제작 단계에 직접 참여해 자사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반영했습니다. 이러한 긴밀한 협력의 결과로 탄생한 항공기가 바로 루프트한자가 시티 제트라 명명한 보잉 737로, 이는 항공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종 계열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루프트한자는 이 시티 제트를 세계 최초로 정기 노선에 투입하며, 제트 시대를 일상적인 항공 여행의 일부로 정착시켰습니다.
1970년
4월, 프랑크푸르트–뉴욕 노선에 보잉 747이 처음 투입되면서 북대서양 노선에서 루프트한자의 점보 시대가 막을 올렸습니다. 점보 제트로 불리는 보잉 747은 우아한 외형과 압도적인 크기 덕분에 ‘하늘의 여왕’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루프트한자 초기 사양 기준으로 퍼스트 클래스 32석, 이코노미 클래스 333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두 개의 통로, 기내 영화관, 상부 데크의 라운지까지 갖춰져, 장거리 노선 승객들에게 공간과 편의성 면에서 전혀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1972년
점보 제트는 승객에게만 혜택을 가져다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프트한자는 루프트한자는 초기부터 화물 운송에서 잠재력을 인식하고, 1972년 세계 최초로 보잉 747 화물기를 도입했습니다. 이 화물기의 가장 큰 특징은 전면부가 위로 열리는 스윙업 노즈 도어로, 이 덕분에 대형 중량 화물의 적재가 한층 수월해졌습니다.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와 항공유 가격 급등으로 루프트한자는 운항 규모를 축소하고, 비용 절감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합리화 조치를 단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노선 실적은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루프트한자는 다수의 해외 항공사들에 비해 탄탄한 체력을 유지한 것으로 평가 받았으며, 이후 10년 동안 여객 수를 꾸준히 늘릴 수 있었습니다.
1977년
German Cargo Services GmbH 설립과 함께 루프트한자 화물 사업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법적으로 독립된 전세기 자회사를 통해 루프트한자는 비용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 독일 카고는 부피가 크거나, 취급이 까다롭거나, 살아 있는 화물 취급 부문에서 빠르게 전문성을 쌓아갔습니다. 경주마와 부화한 지 하루 된 병아리, 심지어 완전한 산업 설비에 이르기까지, 정기 항공편의 화물칸에 실을 수 없는 모든 화물은 이 전세기 자회사가 맡아 처리했습니다.
‘독일의 가을’ 테러 사태 당시 루프트한자 항공편 LH 181이 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0월 13일, 테러범들이 보잉 737 란츠후트 항공기를 납치했으며, 아덴에서 기장 위르겐 슈만을 피살당했으며, 인질극은 모가디슈 공항에서 종결되었습니다. 10월 18일 GSG 9의 구출 작전으로 승객 86명 전원이 구조되었고, 이 사건은 독일 항공 역사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1979년
기내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으로 여성 승무원의 바지 착용이 공식 허용되며 유니폼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루프트한자는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는 한편, 전통과 진보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했습니다.
1983년
3월 29일, 첫 번째 에어버스 A310-200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습니다. 루프트한자는 ‘출시 고객’으로서 설계 단계에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1986년
에비 라우스만과 니콜라 루네만은 루프트한자에서 상업용 항공기 조종사 훈련을 시작한 최초의 두 여성입니다. 이들은 이후 여성 조종사들의 길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8년 8월, 두 사람은 보잉 737의 부기장으로 첫 정기 항공편을 운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몇 년 동안은 여성 조종사에 대한 별도의 유니폼이 없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승객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라는 이유로 넥타이와 남성용 모자를 포함한 남성용 유니폼을 착용해야 했으며, 사실상 ‘남성 복장’을 하고 근무해야 했습니다.
미셸 제트는 루프트한자에서 보잉 727 기종의 조종실에 비행 엔지니어로 근무를 시작한 최초의 여성입니다. 이로써 이후 더 많은 여성들이 조종실에 진출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1988년
6월, 기업 아이덴티티 전면 재디자인안이 공개되었습니다. 기체 동체와 꼬리까지 노란색을 적용하는 등 노란색을 대폭 강조하자는 제안에 따라 보잉 737-200 한 대에 시험 도색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디자인은 날아다니는 카나리아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대중과 직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강력한 항의 끝에 결국 철회되었습니다.
1989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첫 보잉 747-400이 도착하며 장거리 항공 여행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압도적인 규모와 항속 거리, 최신 기술을 갖춘 이 기종은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으며
등록번호 D-ABVE의 보잉 747-400은 1990년 9월, 독일 통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포츠담’으로 명명되었습니다. 이는 옛 동독 지역의 도시 이름을 세계로 알리기 위한 의도적인 제스처였습니다.
공식적인 독일 통일을 하루 앞둔 날, 루프트한자는 역사적인 특별 비행을 수행했습니다. 약 100명의 연방의회 의원을 태운 에어버스 A310이 쾰른/본에서 출발해 베를린 테겔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이로써 루프트한자는 45년 만에 공식적으로 베를린에 복귀했으며, 10월 28일부터 정기 운항을 재개했습니다.
동서독 간의 이동은 빠르게 정상화되었습니다. 루프트한자는 다수의 신규 노선을 개설하며 이에 기여했고, 항공 여행은 수백만 명에게 새로운 자유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92년
냉전 종식과 세계 경제의 개방에 힘입어 루프트한자는 노선 네트워크를 대폭 확장했습니다. 1992년 동계 운항 일정에서는 케이프타운, 빈트후크, 알마티로의 직항 노선이 처음 개설되며, 새로운 국제 시장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었습니다.
1993년
루프트한자는 Miles & More를 도입하며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상용 고객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승객들은 마일리지를 적립해 좌석 승급, 무료 항공권, 라운지 이용 등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독일 항공 업계에서 현대적인 고객 로열티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한편 에어버스 A340이 기존의 DC-10과 B747-200을 대체했습니다. 더 조용하고 현대적인 객실을 갖추며, 장거리 노선의 이코노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편의성이 한층 향상되었습니다.
유럽 내 노선에서는 퍼스트 클래스가 단계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 ‘유럽 컨셉트’로 불린 새로운 서비스 컨셉트의 일환으로, 루프트한자는 단거리 및 중거리 노선의 기내를 2클래스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동시에 비즈니스 클래스를 대폭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이는 유럽 대륙 노선에서 새로운 프리미엄 상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에어버스 A319는 A320 기종을 보완하는 소형 기종으로 도입되어, 유럽 항공 교통의 핵심 요소로 정착했습니다.
1997년
스타 얼라이언스는 프랑크푸르트에 설립되었습니다. 루프트한자는 유나이티드항공, 에어캐나다, SAS, 타이항공과 함께 세계 최초의 글로벌 항공 동맹을 출범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서비스 제공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습니다. 승객들은 전 세계 네트워크에서 공용 라운지를 이용하고, 일관된 여행 경험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며, 해당 네트워크는 106개국 578개 이상의 도시를 1,334대가 넘는 항공기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한편 루프트한자는 완전 민영화 기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익에 대한 압박이 커졌지만, 동시에 신규 상품과 기내 장비에 대한 투자를 보다 유연하게 진행할 수 있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같은 해에 현대적인 레트로미래주의 스타일을 반영한 전면적인 디자인 개편도 이루어졌습니다. 은빛 액센트와 전설적인 Ju 52를 은은하게 연상시키는 요소, 아이코닉하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은 이후 항공기와 기내 잡지, 객실은 물론 기내 식기류에 이르기까지 루프트한자의 전반적인 기업 아이덴티티 전반에 적용되었습니다.
루프트한자는 ‘퓨처 콘티넨털(Future Con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승객들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개선 사항을 도입했습니다.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가운데 좌석을 비워 두어 프라이버시와 팔꿈치 공간, 휴식을 위한 여유 공간이 더욱 넓어졌습니다. 동시에 유럽 노선의 기내 서비스도 현대적으로 개편되었으며, 세련된 디자인의 새로운 기내 식기를 도입했습니다.
이제 승객들은 기내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루프트한자 플라이넷®은 뮌헨–로스앤젤레스 노선에서 정기 운항에 처음 적용되었고, 이를 통해 루프트한자는 구름 위에서 승객에게 고속 인터넷을 제공한 세계 최초의 항공사가 되었습니다.
같은 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루프트한자 퍼스트 클래스 터미널과 두 곳의 새로운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곳에서 퍼스트 클래스 승객과 HON Circle 회원들은 개별 맞춤 서비스와 모든 여정을 특별하게 만드는 분위기 속에서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습니다.
2005년
항공의 새로운 장이 열립니다. 툴루즈에서 세계 최대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이 공개 행사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어버스 A380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첫 공개 행사를 가졌으며, 상용 투입을 3년 앞두고 기체 번호 004번 항공기가 시험 비행의 일환으로 국제공항에 처음 착륙했는데, 그곳이 바로 루프트한자의 허브 공항인 프랑크푸르트였습니다.
2006년
루프트한자 대륙간 노선 항공기에 새로운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을 장착하는 개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절제된 색감의 고급 가죽 좌석은 기내 전체에 새롭고 현대적인 인상을 더해주고, 좌석 경량화로 연료 소비 절감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같은 해, 독일에서 제18회 FIFA 월드컵이 개최되었으며, 루프트한자 항공기 50대에 ‘풋볼 노즈(football nose)’ 도장이 적용되었습니다. 이 항공기들은 독일 월드컵 팀을 전 세계로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2008년
루프트한자 앱이 출시되며 루프트한자의 모바일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기술 및 디자인 개편을 거쳐 2023년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디지털 여행 동반자 버전이 출시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거대한 항공기가 착륙했습니다. 루프트한자는 세계 최대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을 처음으로 인도받았습니다. 같은 날, 등록번호 D-AIMA의 A380-800에 페트라 로트 프랑크푸르트 시장이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또한 이 항공기 기내에서는 새로운 루프트한자 퍼스트 클래스가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고급스러운 좌석으로 길이 207cm, 폭 80cm(81.5×31.5인치)의 침대로 변환할 수 있습니다.
2011년
루프트한자는 세계 최초로 바이오 연료를 일상적인 정기 운항에 시험 적용하며 미래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를 위해 특별히 선정된 에어버스 A321 한 대가 6개월간 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 노선을 오가며 운항했습니다. 이 시험 단계는 보다 지속 가능한 항공 운항을 향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2012년
루프트한자는 세계 최초로 보잉 747-8 인터컨티넨털을 인도받았습니다. 독보적인 점보 제트의 신형 세대인 이 기종은 이전 모델보다 더 조용하고 연료 효율이 높으며, 편의성 또한 향상되었습니다.
같은 해, 약 4년에 걸친 공사 끝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탑승동 A-플러스가 예정대로 개장했습니다. 길이 800m(2,625피트)에 달하는 제1터미널의 서쪽 확장 구간은 주로 루프트한자와 스타 얼라이언스 파트너 항공사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2016년
뮌헨 공항에 새로운 위성 터미널이 문을 열었습니다. 짧은 탑승구 동선과 향상된 여행 경험을 자랑하는 현대적인 허브로, 루프트한자의 뮌헨 허브 공항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더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맞아 루프트한자는 독일 선수단과 장비를 브라질로 수송하며, 스포츠를 위한 특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같은 해 함부르크에서 루프트한자는 첫 번째 A350-900을 인도받았습니다. 이 쌍발 장거리 기종은 혁신적인 복합 소재를 대거 적용해, 당시 시장에서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인 항공기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루프트한자에 승객 1인당 100km 비행 시 약 2리터의 연료를 소비하는 소위 “2리터 클래스” 진입을 의미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와 뮌헨은 또 하나의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루프트한자는 두 차례의 주요 행사에서 새로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공개하며, 이에 맞춰 새롭게 단장한 기종을 선보였습니다. 기존에 꼬리 날개에 있던 노란색은 사라지고, 세련된 짙은 남색이 브랜드를 상징하는 컬러로 자리하고,
2020년
3월,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은 사실상 멈춰 섰습니다. 매일 수천 명이 전 세계를 오가던 하늘에는 적막이 내려앉았습니다. 대부분의 루프트한자 항공기는 운항을 중단한 채 활주로와 유도로에 주기되었고, 엔지니어들의 세심한 관리 아래 보존 및 장기 계류 상태로 유지되었습니다. 항공편 취소와 귀국 수송편 운항,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이어졌습니다. 루프트한자는 유연한 재예약 규정, 새로운 위생 기준, 공항 내 비대면 절차 등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 콘셉트로 팬데믹에 대응했습니다.
2022년
위기 이후 새로운 새벽이 찾아오듯, 효율성과 편의성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신형 항공기를 도입했습니다. 8월 30일, 이른바 “드림라이너”라고 불리는 첫 번째 보잉 787-9 항공기가 프랑크푸르트에 착륙했습니다. 같은 해, 루프트한자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올림픽에 참가하는 독일 선수단을 특별 항공편으로 수송했으며, 루프트한자 카고는 스포츠 장비 운송을 담당했습니다. 올림픽을 위한 공동 임무였습니다.
루프트한자는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품 캠페인을 선보였습니다. ‘루프트한자 알레그리스’라는 이름 아래, 모든 클래스의 여행 경험이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되었습니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하나의 기준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데 있습니다. 비즈니스 클래스만 보더라도, 추가 프라이버시를 제공하는 스위트형 좌석부터 길이 2.20m(7피트 이상)에 이르는 초대형 침대형 좌석까지 승객들은 다양한 좌석 옵션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행은 그 어느 때보다 개인화되고, 여유로우며, 편안한 경험으로 거듭났습니다.
2025년
새로운 루프트한자 알레그리스 객실은 점점 더 많은 항공편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뮌헨 출발 노선으로는 뉴욕, 시카고, 마이애미, 상하이, 케이프타운 등이 포함되며, 또한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드림라이너 기종에서도 알레그리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026년
함께 루프트한자의 100주년을 기념하며, 기대에 찬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봅니다.
루프트한자의 첫 100년 – 글로벌 브랜드의 역사
이 책은 풍부한 삽화와 함께 루프트한자의 100년 역사를 처음으로 종합적으로 조명하며, 1926년의 개척기부터 나치 시대의 역할, 전후 재출범, 항공 산업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새롭게 선보이는 사료와 방대한 아카이브 자료, 희귀 사진을 바탕으로, 이 책은 깊이 있는 역사적 통찰을 제공하며 기술과 비전, 세계를 향한 지향이 오늘날의 루프트한자를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생생하게 전합니다.